변화하는 글쓰기
비정통, 사이비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 테크니컬 라이팅 책에서 배운 기법은 영원불변한 법칙일까?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닐 수도 있다. 모든 내용이 항상 옳다면 애초에 개정판이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널리 읽힌 책에서 본 기법은 항상 옳다는 맹목적 믿음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그 기법이 나온 배경에 공감했거나 오랫동안 따라와서 마치 내 것처럼 익숙해졌다면 더욱더.
2022년 말 밋업을 준비할 때쯤, 요즘 세대 문해력이 우스개처럼 퍼져 나갔다. “심심한 사과”로 불거진 사태인데, 관련 기사 중 하나는 한자어를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비웃지 않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기도 했다. 이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은 여기다.
문해력만 따지면,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어휘를 모르는 게 더 심각하다.
사회가 변화하다 보면 옛것이 사라지고 새것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편할 수도 있다.
당시 밋업 발표 자료 초안에는 그 사태를 보며 느낀 바가 들어 있었다. 기술 문서 독자 역시 한자어보다 영어에 익숙한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한자어를 고집할 수 있을까?
기술 문서는 문학이나 예술이 아니라 상업 자료다. 독자가 읽지 않으면 아무리 내용이 훌륭해도 소용없다. 그렇기에 세상이 변하고 독자의 소통 방식이 변하면 따라 변해야 한다.
Google 대신 YouTube에서 검색하는 세대가 주 독자가 되면, 제일 처음 접촉할 기술 자료는 문서가 아니라 영상일 것이다. 그때는 기술 소개 영상을 만들어야만 독자를 기술 문서로 유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일상에서는 꽤 많은 외래어를 쓴다(‘소셜 미디어에서 히트한 챌린지!’, ‘시스템이 다운되는 바람에 오늘 릴리스는 딜레이됐습니다.'). 동사무소는 공식적으로 ‘주민센터’가 된 지 오래고, 국립국어원은 쉽고 편한 우리말을 쓰자면서 ‘굿즈’를 ‘팬 상품’이라고 부르자고 한다(‘팬’을 우리말로 간주한다는 뜻).
특히 IT 분야에서는 적절한 한국어 표현이 없어 영어 독음을 꽤 많이 쓴다. <밋업 발표 자료 초안에 있던 내용 #2> 오른쪽 그림은 내가 쓴 기술 문서 일부인데, ‘콘솔', ‘API’, ‘서비스'는 순우리말이 아니지만 이미 모두가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단어다. 그렇다면, 20년 후에는 ‘기능'을 ‘피처'로, ‘사용'을 ‘유즈'로, ‘제공'을 ‘프로바이드'라고 쓸지도 모른다. 기능이라는 한자어는 못 알아듣지만 ‘피처’라는 영어는 알아듣는 독자가 늘어난다면, 기술 문서도 그렇게 쓸수 밖에 없다(이미 회사 내에서는 ‘피처'라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기술 문서의 목적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알리거나 올바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좋은 우리말과 표현을 써도 목적 달성에는 실패다.
이 이야기가 실제 밋업에서 빠진 이유는, 리허설할 때 굉장한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과격하다느니, 다른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반발할 것이라느니. 지금 당장 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기술 문서를 쓰는 사람은 독자를 파악하고 시대 변화에 따라 독자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는데도, 거부 반응이 컸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해한다. 나도 얼마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몽땅 뒤집힐 수 있다는 주장을 들으면 몹시도 끔찍하고 과격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거부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변화가 멈출까?
요즘에는 챗GPT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유사한 사례를 보게 된다. 번역 커뮤니티에서는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이 맞선다. 번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하던 방식에서 AI로 초벌 번역한 후 손보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니 MTPE(Machine Translation Post Editing)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주장을 끔찍해하며 기계는 절대로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AI가 번역가를 대체할지 아닐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고전적인 방식을 지켜나갈 의무가 있는 예술가나 학자가 아니라면, 변화를 느끼면 그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손해 볼 일 없고, 일어난다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유사하게, AI가 테크니컬 라이터를 대체할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한사코 외면하려 하기보다는 그 변화에 대비하는 편이 낫다.
한글이 온통 외래어, 즉 영어 단어 독음으로 뒤덮일 날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한자어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얼마 전에는 ‘상이하다'라는 말을 ‘유사하다' — 생각해 보니 ‘유사하다’도 한자어! ‘비슷하다’고 말하는 게 낫겠네!— 는 뜻으로 알아듣는 상황도 목격했다. 이런 독자에게 ‘상이'라는 단어가 있는 문서를 내밀었다간, 내용을 오해해서 잘못 썼다며 컴플레인(!)할지도 모른다.
전자책을 즐겨 읽는 편인데, 얼마 전에 ‘챗북’이라고 표시된 책을 발견했다. 무엇인지 찾아봤더니, 요즘 스타일에 맞춰 작가와 채팅하는 느낌으로 책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 주는 형태란다. 전에 없이 바쁜 시대답게 영화나 드라마를 요약해 주는 영상이 인기라더니, 이젠 책까지 요약본으로 보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요약본으로 보는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심지어 책까지 요약해서 보다니!
‘그럴 거면 차라리 보지 말지? 그 책 봤다고 말하고는 싶은데 읽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건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지만, 퍼뜩 지난 밋업 준비 사태가 떠올랐다. 내가 변화를 따라야 한다고 했을 때 팀원들이 보인 반응이. 챗북을 내놓은 회사는 시대 변화를 포착해 그에 대비했을 뿐이다. 나는 일개 독자일 뿐이니 챗북을 읽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변화를 멈출 수는 없다. 시대가 ‘요약'과 ‘시간 절약형 읽기'를 요구한다면, 상업계는 당연히 변화에 대비할 것이다. 내가 만약 출판 업계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을지언정 변화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전략적으로 이런 시대에도 고전 방식을 고수하는 독자를 위한 상품을 내 보거나.